방명록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살고자 합니다.

소망의샘

  • Home
  • 방명록
  • 소망의샘
소망의 샘

성경이 만든 사람 < 13 >

  • 작성자: 남궁형
  • 작성일: 05-10-31 06:06
  • 조회: 987회

본문

성경이 만든 사람 < 13 >


“ 비누는 쓸 수록 물에 녹아 없어지는 물건이지만, 때를 씻어

준다. 물에 녹지 않은 비누는 결코 좋은 비누가 아니다. 사회

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 없고 몸만 사리는 사람

은 물에 녹지 않는 비누와 같다.”

-존 워너메이커

13.

헌신의 즐거움으로 세운 형제교회

감사의 터 위에 세운 교회

베다니 교회는 1858년 월세 5달러를 지불하는 작은 상가 건물에서

1년 6개월 만에 자체 성전을 건립하였다. 그 후로도 베다니 교회는

거듭 발전하여 1874년에는 5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교회 건물을

짓게 되었다. 이것도 부족해서 1901년 워너메이커는 자신이 소유

하고 있던 모리스 스트리트의 큰 땅을 교회에 기증함으로써 1902

년 10월 26일에 세계적인 규모의 베다니 교회 건축을 완성하였다.

워너메이커가 땅을 기증하고 교회 건축을 결심하게 된 데에는 특

별한 이유가 있었다.

필라델피아 북쪽 지역에 큰 불이 발생한 적이 있었다. 그 화재 사건

으로 상가 대부분이 불타고 워너메이커의 상점까지 번지게 되었다.

나무로 지어진 그의 상가 건물에 불씨가 붙었을 때 직원들은 상점

을 살리기 위해 필사적으로 물통을 나르면서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

다. 그러나 6층 짜리 클락 타워 건물은 화재로 전소되고 말았고, 10

만 달러 정도의 손실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워너메이커는 더 큰

피해 없이 사업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로운 성전을 지

어 헌당할 것을 결심하였다. 그는 모리스 스트리트에 큰 땅을 소유

하고 있었는데 감사헌금으로 이 땅을 교회에 기증했고, 드디어 이

터 위에 새로운 베다니 교회 건물을 세우게 되었다.

워너메이커의 용기 있는 지도력 아래서 베다니는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하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베다니의 비전에 이끌려 교회로 몰려

들었다. 그러나 공간도 제한 적이고, 그 자신 또한 평신도 사역자로

서 양무리를 돌볼 수 있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는 20세기 모델 교

회는 더 이상 한 지역에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세계로 뻗어 나갈 것을

예견하였다.

그는 베다니의 정신을 가진 새로운 교회들이 더 많은 지역에 세워

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고, 할 수만 있으면 이 일을 위해

서 자신의 재물을 사용하길 소원하였다. 그래서 그 당시로는 매우

독특한 계획을 세우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베다니의 "형제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다.

형제교회 개척의 시작

이런 그의 생각은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자신이 후원

하는 선교사들을 돌아보고 격려할 겸 중국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선교사의 안내를 받아 시골 마을로 들어선 그는 우뚝 세워져 있는

아름다운 교회 건물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리고 때마침 마을 입구

에서 한 노인이 한 마리의 소와 한 젊은이에게 멍에를 지게 하고 밭

이랑 갈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워너메이커는 이상하게 여겨

어떻게 사람과 소가 한 짝이 되어서 밭을 가느냐고 노인에게 물었

다. 노인은 저기 보이는 예배당을 건축할 때, 헌금할 돈이 없어 소

한 마리를 팔아 헌금을 하고 대신 아들이 멍에를 메고 있다고 대답

했다. 워너메이커는 노인의 말에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서 감격하

면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주님! 저로 하여금 고난의 멍에를 메게 하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할 때에 이들 부자처럼 헌신의 즐거움을 알게 하옵소서."

중국에서 돌아온 워너메이커는 교회 세우는 일에 자신의 재물을 아

끼지 않고 헌금하기 시작했다. 그는 베다니 교회를 세우는 일 외에

도 많은 형제 교회와 또 다른 교회 건물을 짓는 일에 자신의 물질을

아낌없이 드렸다.

첫 번째 형제교회는 1902년 10월에 필라델피아 남쪽 지역에 세운

"존 챔버스 메모리얼 교회"로 그의 영적 스승인 존 챔버스 목사님의

이름을 딴 것이다. 두 번째 교회는 1906년 2월에 문을 연 베다니 서

쪽 지역의 "베다니 템플 교회"이며 세 번째 교회는 하버타운 지역의

"베다니 연합 교회"로 1911년에 지어진 것이다. 두 번째로 세웠던

베다니 템플 교회는 워너메이커의 소유 부지인 마구간 터에 처음

설립되어 1906년 9월까지 불과 7개월 동안 6백 명의 주일학교 학생

들이 등록 했고, 3년 만에 교회를 건축했는데 모교회인 베다니 교회

만큼 크고 웅장한 교회를 지어 지역 주민들에게도 양질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이 교회는 워너메이커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3천 명

정도의 교인이 출석할 만큼 큰 교회로 성장하였다.

세 번째로 세웠던 "베다니 연합교회"는 그의 딸인 메리 워버톤이 아

버지가 지은 낡은 교회 건물을 헐고 1949년 9월에 새 건물을 지어

헌당한 것으로 아버지 워너메이커의 뜻을 이어나가기 위함이었다.

그 교회 건물에는 워너메이커와 아내 메리의 기념관이 현재까지도

남아 있는데 커다란 초상화 밑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설립자 존 워너메이커(1838-1922)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건축 헌금으로 세워진 교회들

워너메이커는 비록 형제교회들이 아니더라도 다른 교회들을 건축

하는 일에 재정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도움이 필요한 교회라

면 언제든지 오르간, 피아노, 의자, 성찬기, 성가대 가운 등을 기증

해 주었다. 그의 도움을 받은 많음 교회 중에 볼티모어 애비뉴에

있는 "바울 교회" 와 젠킨타운에 있는 "그레이스 교회" 는 그의 건

축 헌금으로 세워지는 교회이다.

특히 그레이스 교회는 워너메이커의 시골집인 린덴허스트 바로 옆

동네인 젠킨타운에 위치한 교회로 그의 자녀들이 시골에 내려올

때마다 출석하던 교회였다. 원래 그 교회는 자체 건물이 없어 세를

살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워너메이커는 선뜻 교회건물을

지어 줄 것을 제안했고,교회 건물 공사는 순조롭게 징행되었다. 그

러던 중 교회 건물 완공을 며칠 앞두고 갑자스레 5살 난 딸 헤티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 순간부터 워너메이커의 부부에게 그레

이스 교회는 사랑했던 어린 딸에 대한 추억의 장소가 되었다. 1872

년 9월 4일 워너메이커가 그레이스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얼마

나 교회를 사랑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선하심이 나로 하여금 젠킨타운에 그

레이스 교회를 지을 것을 결심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딸

헤티의 죽음도 나로 하여금 더 좋은 교회 건물을 짓도록 했습니다.

나는 이 교회를 헌정하면서 교우 여러분들이 아무 부담도 느끼지

말고, 그저 이 교회가 주님의 복음만 가르치고 전하는 데 사용되길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바라기는 새 교회 건물이 언약의 축복의

통로였던 야곱의 사닥다리와 같이 기도와 찬양이 끊이지 않고 오

르내리는 축복의 장소가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존 워너메이커

그로부터 90년 후인 1962년 그레이스 교회는 부흥하여 더 아름다

운 교회를 지었고, 교회 대형 유리 창문에 워너메이커가 주일학교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설교단에 서 있는 형상을 새겨 놓음으로

써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워너메이커는 "교회 건축하는 일에 희생적으로 헌신하면서도 즐

거움으로 그 멍에를 메게 해 달라" 고 기도했던 대로 삶을 살았다.

웅장한 베다니 성전을 완공하고 헌당식을 가지면서 한 그의 고백

은 워너메이커의 인생 전체를 주관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어렸을 때 헌금할 돈이 없어 벽돌 몇 장을 드린 저를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세울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

뻐하였도다" (시 122:1).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개인정보처리방침

닫기

이메일무단수집거부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