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부장의 믿음 / 눅 7 : 1 ~ 10
- 작성자: 남궁형
- 작성일: 06-02-02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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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하시더라."(9절)
[본문 말씀]
예수께서 모든 말씀을 백성에게 들려주시기를 마치신 후에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시니라
어떤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더니 예수의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 몇을 보내어 오셔서 그 종을
구원하시기를 청한지라 이에 저희가 예수께 나아와 간절히
구하여 가로되 이 일을 하시는 것이 이 사람에게는
합당하니이다
저가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함께 가실쌔 이에 그 집이 멀지 아니하여 백부장이
벗들을 보내어 가로되주여 수고하지 마옵소서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유대인들 중에서도 이런 믿음은
만나보지 못했다" 고 칭찬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왜 백부장의 믿음을 높이 인정하셨을까요?
그것은 백부장의 삶이 올바르고 따뜻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원수까지 인정할 만큼 바른 삶을 살았습니다.
유대인들의 회당을 지어주기까지 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건강한 신앙은 비신자들까지도 아름답게 보는 보편타당한
도덕과 인격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더욱 훌륭한 것은 백부장이 자신이나 가족을 위해 이런
간청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로마에서 종, 정확하게 말해 노예는 짐승보다 못한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이 백부장은 노예를 위해 예수님께 사람들을 보내
간청합니다.
본문 2절에 보면 백부장이 이 노예를 사랑해서 그렇게
했다고 돼 있습니다.
약하고 병든 자들에 대한 사랑이 없는 신앙은 하나님과
진정 무관한 것입니다.
빈틈없는 교리는 있었으나 행함은 없고 율법에 대한
엄격한 준수는 있었으나 사랑의 삶은 없었던 당시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달리 백부장은 이방인이었으나 원수인
유대인조차 인정한 아름다운 삶이 있었고 병든 노예
한 명에게도 마음을 쓸 줄 아는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는 때로 신앙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신앙에 따른
정당한 열매인 행함에 너무 소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행함을 말할 때에도 십일조나 예배 출석 같은 의식의
준수를 강조합니다.
하지만 인격이나 사랑의 실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우대인들이 예수님께 책망 받은 일이 무엇인가요?
주님은 이들이 심지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일까지
상습적으로 행하고 있었음'(눅20:47)을 밝혀 주십니다.
종교적 삶에서는 완전했던 이들이 어떻게 과부의
가산을 빼앗는 일까지 할 수 있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 마음에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방인이었던 로마 백부장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대교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회당을
지어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사람이야말로 진실로 하나님 나라에서 멀지 않은
사람이며 예수님께 큰 믿음이라고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큰 믿음은 삶이 따르는 신앙이며 사랑의
실천이 따르는 경건인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백부장처럼 저희도 삶속에서 경건한 사랑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주의 백성이 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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