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은 것 / 롬 8 : 23 ~ 24
- 작성자: 남궁형
- 작성일: 06-02-10 04:24
- 조회: 1,2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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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24절)
[본문 말씀]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기독교는 과거보다 현재와 미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신앙인에게 과거는 오늘을 있게 한 섭리의 시간입니다.
그리고 현재는 소망하는 미래에 의해 세워지고 의미를
갖게 되는 시간입니다.
즉, 미래에 대한 소망 때문에 현재를 충실하게 보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니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리오"
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여기서 `보이는 소망' 이란 이미 성취됐기 때문에 내가
지금 그 결과를 소유하고 있는 과거의 소망, 바로 과거의
구원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영혼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영혼 구원은 아직도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는 소망은 이미 이루어진 과거의
영혼 구원이 아니라 23절에 나오는 두번째 양자됨, 바로
몸의 구원입니다.
우리는 영육이 온전히 구원 받게 될 미래를 위해 구원
받은 것입니다.
과거에 받은 영혼 구원은 미래에 있을 전인 구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현재는 영화의 영광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지금은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로마서 1~7장은 영혼 구원에 대한 말씀입니다.
8장 1~17절은 성화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리고 18~39절은 구원의 마지막 완성 즉, 영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신학교에서 구원론을 배울 때 칭의론과 성화론은
자세하고 깁니다.
그런데 영화론은 길어야 한 단락에서 한 쪽 이하로
나옵니다.
왜 그럴까요?
칭의와 성화는 직접 체험한 사실을 갖고 쓰지만 영화는
누구도 본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성경만 인용하고 넘어 갑니다.
이렇게 영화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불안전한 육체를 가지고 사는 우리는 이 영화의
소망만큼 간절한 기대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영혼이 구원 받은 기쁨 이상으로 병들고 장애된
내 육체를 구속해주실 영화에 대한 소망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을 따라 살기 위해 육과 싸우는 고통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영화에 대한 갈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는 영화의 날이 오면 더
이상 병들어 고통스럽게 하는 육체도, 나를 죄짓게 하는
육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속에 영화의 영광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니! 영원한 나라에서 영광된 몸으로 우리의 구원이
완성될 그 날을 바라보며 승리하며 사는 저희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완재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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