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을 넘어서 / 마 15 : 21 - 28
- 작성자: 남궁형
- 작성일: 06-03-03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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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이에 예수께서 다답하여 가라사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시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28절)
[본문 말씀]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여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간혹 자존심이 상해서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 상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좀더 자세히
묵상하면 의외로 매우 단순한 문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정과 가족간의 관계 및 평화보다 내 자존심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심할 경우에는 주님보다 내 자존심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때가 종종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일들이 우리 안에서, 또
삶에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외모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외모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돈에 대한 상처가 있는 사람은 돈에 대하여 자존심이 상할
때가 많습니다.
미인에게는 못 생겼다는 말이 큰 상처가 되지 못합니다.
그것은 외모에 대한 상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상처는 자존심을 공격합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자하고 온유하고, 사랑이신 주님의 말씀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의 딸을 치유해 달라고 찾아온 이방 여인에게 당시의
유대인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냉대를 합니다.
마가복음에 보면 `개' 로 비유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이 왜 그러셨을까요?
아마도 이 여인은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것같습니다.
특히 유대인들에 대한 상처가 자존심으로
작용했던 듯합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주님의 이런 태도에 담담히 고백합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여인에게 주님은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자기 자존심보다도 주님을 더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 때문에 불순종한다면 내 자존심이 어느새 우상이
되어 있는 것이겠지요.
사람에 따라서 다르지만 "다른 것은 다 참아도 자존심
상하는 것은 못참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이런 사람들에게는 꼭 자존심이 상할 일들이
많이 생깁니다.
이 사람들은 자존심 때문에 관계를 파괴하고, 일을 버리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존심보다 소중한 주님을 만나지 않고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수렁에 빠지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실상과 증거는 내 자존심보다도 주님이 더 소중함을
고백할 때 비로소 나타날 수 있습니다.
자존심! 이것이 주님보다 앞서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자존심의 문제로 상처받고, 상처 주기도 하면서
고통 당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오늘 우리 자존심보다 소중한 주님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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