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세 살, 미운 일곱 살 / 벧후 3 : 18
- 작성자: 남궁형
- 작성일: 06-03-13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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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저에게
있을지어다"(18절)
[본문 말씀]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베드로후서는 교회 안에서 발생한 문제들, 즉 배교와 거짓
교사들, 그리고 성도들의 신앙이 복음으로 굳게 무장하여
세상의 철학과 쾌락주의 등과 싸워 이길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사도 베드로를 통해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거친 파도가 뒤엉킨 곳이라면
교회도 역시 편안하기만 한 곳이 아니라 배교와 거짓,
세상의 유혹들이 뒤엉킨 영적 전투의 장입니다.
따라서 중생함으로 시작된 신앙은 반드시 자라나야 합니다.
이것이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는 비결인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신앙은 자라나야 합니다.
본문을 깊이 묵상해보면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야 합니다.
나무가 자라서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물과 햇빛, 그리고
좋은 토양이 필요하듯이 믿음이 자라기 위해서는 주님의
은혜와 예수를 아는 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무가 자라는데는 기후의 변화나 가뭄 등 많은
변수가 있듯이 믿음의 성장에도 변수가 많다는 것입니다.
흔히 아이가 세 살이나 일곱 살이 되면 앞에 `미운' 이란
수식어를 붙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걷지도, 뛰지도, 혼자서는 제대로 먹지도, 말도 못하던
아이가 이제 막 걷기 시작하고 흘리는 것 반, 먹는 것
반이지만 혼자 먹을 수 있게 되고 엉성한 발음이지만 말하기
시작하면서 부모의 말을 거역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참 재미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태어나서 무엇인가 자기 혼자 할 수 있는 단계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 거역이라는 사실이 말입니다.
아마도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거역했던 모습이 원죄로
유전되었다는 것을 발견하는 첫번째 증거가 아닌가 합니다.
아담과 화와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했던 것처럼
아이들도 부모처럼 되고 싶어한 것이지요.
그러다가 하나님께 징계를 당한 것처럼 아이들도 부모에게
꾸중을 듣기도 하고 매를 맞기도 하는 것이겠지요.
이 시기의 특징은 자기 주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으면서도 자기 혼자 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는 때입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대부분 부모의 손을 뿌리치고 혼자
걸으려고 하다가 넘어지고 깨지는 시기입니다.
신앙의 성장도 이런 단계를 거칩니다.
성경을 조금 알고 예배에 조금 익숙해지면 판단하고 평가하고
자기 확신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교와 배움을 무시하곤 합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오늘의 기도]
하나님! 때때로 주님의 손조차도 뿌리치고 혼자 걷고
싶어했습니다.
주님의 손잡아 주심이 얼마나 귀한지 이제 압니다.
우리의 손을 잡아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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