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을 돌아보는 자 / 눅 10 : 25 ~ 37
- 작성자: 남궁형
- 작성일: 06-11-11 05:46
- 조회: 9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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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하시니라"
(눅 10:36~37)
[본문 말씀]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가로되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이 사람이 자기를 옳게 보이려고 예수께
여짜오되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소위 선한 사마리안의 비유라고 알려져
있는 오늘의 말씀을 보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27절)는 말씀과
연관해 한 율법사가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29절)라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질문은 `누구오니이까' 라는 것에
초점이맞추어진 `이웃의 개념에 대한 정의'
를묻는 질문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네 이웃' 에 강조점이 있는 즉,
자신이 베풀어야 할 이웃 사랑이라는
의무의 경계에 관한 질문이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분위기를 생각해볼 때 이는
매우당연한 질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미워하여야 할 원수가 존재하듯(마5:43)
사랑하여야 될 이욱도 존재하였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 율법사의 판단에는 결코
의인이 될 수 없는 무리(죄인과 병자,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넘어뜨리기 위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직접적으로 답을 주시기보다는 간접적인
비유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대신하십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선한 일을 베풀 등장
인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상을
뒤엎는, `더럽고 추악하다' 고 치부되고
있던 사마리아인이 지나칠 정도까지 선을
베푸는 것으로 비유를 끝맺으십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께서
가르치시고자 하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결코 선할 수 없다고 여겨지던 사마라아인의
`선한' 행동을 통하여 그들에게 충격을
주며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36절)라는 답이 자명한 질문을
던지심으로써 그들의 편견과 새로운
사랑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재 우리 사회와 같이 분열되어
있는 상황에 꼭 필요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화d의 사역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편견과 차별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우리의 사랑과 이해와
선행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를 통해서 증명되었듯이
예수님만이 심한 분열 상황에서도 회해를
가져오실 수 있습니다.
그분만이 `차별과 편견 없는 사랑' 을
보여주셨고 차별 없이 구원으로 초대를
하십니다.
동서 화d 남북화d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분열과 대결 국면으로 치닫는
우리 사회에서 주님을 따른 자들이
화d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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