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비결 / 창 16 : 7 - 16
- 작성자: 남궁형
- 작성일: 07-09-26 07:58
- 조회: 81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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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창16:9-10)
[본문말씀]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네 자손으로 크게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아 셀 수 없게 하리라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잉태하였임은 즉 아들을
낳으라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그가 사람 중에 들나귀 같이
되리니
그 손이 모든 사람을 치겠고
모든 사람의 손이 그를 칠찌며
그가 모든 형제의 동방에서
살리라 하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과거 종으로
살 때의 상처는 의식에서는
사라졌지만 그 상처가 자신에게
부정적이고 불안정한 기억이
된다면 계속적으로 현재의
사고와 감정에 그리고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우리도 때때로 억울하고도
부당한 일들을 당항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슴 아픈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백성들과
교회에 대해 등을 돌리고 하나님
과의 관계를 저하갈과 같이
끊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언약의 하나님께서 그녀(하갈)에게
나타나신 것은, 그녀가 그녀의
후손들과 언약의 과계를 끊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갈의 아들과 그 후손들에 관한
약속은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 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12절에 "들나귀 같이" 된다는
말은 그가 자유를 사랑하는 자란
말로서 형제는 노예 상태에
있지만,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적인 예언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가 사랑하고 갈구하는 자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하는
것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또 이스마엘이 '모든 사람을 칠 것'
이란 말씀에서도 그리스도를 위한
희생적 투쟁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에 관한 약속의
말씀은 아쉽게도 그의 삶의
태도에 대한 예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말씀은 그의 주요 관심사가,
자기 보존에 있음으로써 그가
하나니님의 은혜의 줄을 끊고
빠져 나오려고 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이였습니다.
그 후손들 이슬람의 생존 법칙은
한 손에 코란, 또 한 손에는
칼로서 극단적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하갈은 속박의 아들을
낳고 말았습니다.
하갈은 다시 돌아왔지만 나중에
이스마엘이 자기 어머니가
이 전에 가졌던 똑같은 교만한
성격을 이삭에게 나타내었으며
아브람의 약속에 대해서도
경멸감을 나타내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러
하나님과 교제를 갖게 하시고
동행하게 하시고, 약속은 받게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아
들이고 있습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에 우리 인생의
최고 가치를 부여하고 있습니까?
축복된 삶이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요, 즉, 하나님께로 돌아왔으면
예수 안에서 진리에 순종하고
더불어 한 마음 한 뜻을 이루며
서로 협력하는 것이야 말로
축복받는 비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의 기도]
하나님!
축복의 기별은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요 예수님 안에서 진리에
순종하는 것임을 알게 하시고
실천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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